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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치 :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2065

남해 최고의 명산으로 일컬어 지는 금산의 정상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명찰. 양양 낙산의 홍련암, 강화 석모도의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처로 이름 높은 곳이다. 더불어 보리암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주변 경관이 뛰어난 사찰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금산의 비경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보리암 주변에는 거대한 바위봉우들이 뒤를 막아서고 눈앞으로는 한려해상공원의 망망대해가, 산 밑에는 초승달 모양의 상주해수욕장과 미조항이 펼쳐진 그림같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곳에 바라다 보는 일출은 금산 38경중 마지막 절경으로 일컬어 지는 장관.
보리암으로 오르는 길은 두갈래다. 복곡저수지에서 셔틀버스나 승용차를 이용해 단숨에 보리암까지 오리는 길이고 또 하나는 금산의 절경을 두루 살피면서 한시간여를 걸어서 오르는 길이다. 산행의 묘미와 보리암의 신비경을 맛보기 위해서는 후자를 택하는 게 좋을 성 싶다.
상주해수욕장쪽의 매표소를 통해서 산길을 오르면 금산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롭다는 쌍홍문을 볼 수 있다. 연이어 용굴과 음성굴을 지나면 거대한 절벽위에 서 있는 보리암의 신비경을 한눈에 보게된다. 보리암 앞에는 하얀색의 관음보살상이 서 있고 그 옆으로 작은 삼층석탑이 빛 바랜 모습으로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보리암에서 가장 눈여겨 보아야 할 곳이 바로 이 삼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신라 김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이란 돌로 세웠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불가사의 현상이 일어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신기하게도 이 탑 앞에서는 나침반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사실이다. 석탑의 첫 번째 기단에 나침반이 놓여져 있는데 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침반의 바늘이 제 멋대로 움직임을 알 수 있다. 석탑만 벗어나면 제대로 작동하던 나침반이 석탑밑에만 가면 방향성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이다. 거짓말 같지만 그곳에 가면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보리암 삼층석탑 앞은 금산의 제1전망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암자 전체의 풍광을 조망할 수 있고,상주해수욕장에서 시작되는 푸른 바다와 신새벽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는 최고의 장소이기도 하다.
보리암에서 10여분만 오르면 금산의 정상인 망대에 닿을 수 있다.
보리암은 원효대사가 창건했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보광사의 부속암자였던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그럼에도 보리암에는 두 가지 연기설화가 전해진다.
하나는 가락국의 김수로왕이 왕비로 맞아들인 인도 중부 아유타국의 허황옥 공주와 함께 배를 타고 온 장유선사가 세웠다고 하는 설화다. 김수로왕과 허황옥 공주 사이에서 열 왕자를 낳았는데 그중 일곱 왕자를 장유선사가 데리고 출가를 했다는 것이다. 일곱 왕자를 데리고 출가한 장유선사가 거쳐간 곳은 영남일대에 많이 있는데 김해의 장유암은 그 확실한 사적지이고, 가야산과 지리산의 칠부처가 모두 장유선사의 유적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그 장유선사가 처음 찾아든 곳이 가락국이 자리잡고 있는 김해에서 멀지 않은 이 금산 보리암이라는 것이다. 장유선사는 금산의 천태만상의 변화에 매혹되어 보리암에 터를 잡아 아유타국에서 모시고 온 관세음보살을 모셨는데 지금의 관세음보살이 바로 그때의 관세음보살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원효대사 창건설이다. 의상과 함께 신라불교를 대표하는 원효대사가 강산을 유행하다가 이산의 승경에 끌려 들어 왔는데, 온 산이 마치 방광(防光)하는 듯 빛났다고 한다. 초옥을 짓고 수행을 하던 원효는 이곳에 보광사를 세웠다는 것이다. 이후 보광사에서 백일기도를 올렸던 조선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른 후 감사의 뜻에서 사찰을 둘러싼 산의 이름을 금산이라 부르게 했으며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으면서 보리암이란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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